소년이 온다
국내도서
저자 : 한강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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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어느 날, 교보문고에 갔었다. 종합 베스트셀러에 '소년이 온다'가 4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보통 베스트셀러는 언론이나 광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언론과 독자들은 이런 부류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루고 있고, 정부보다는 시민의 시선에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보았을 때, 맨부커상을 최초로 받았다는 것이 참 큰 파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채식주의자만 해도 2007년에 최초 출간된 이후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상을 받고 재조명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나 역시 그 덕에 읽게 되었지만 말이다.


채식주의자를 먼저 읽었고, 기묘한 인상의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존재하나, 주인공은 말이 없는 소설이었다. 책이 가지고 있는 '폭력'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내 생각해볼 거리가 많았고, 주인공 입장을 다루지 않아서 상상의 여지가 다분했다. 그래서 인상적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추천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었다. 5.18 민주화 운동을 다뤄서 읽기에 마음이 아프고 잔인하다는 평이 많아서 조금 망설여졌지만, 마음이 동하는 지금 읽어야겠다 싶었다. 듣던 대로 읽기가 쉽지만은 않은 책이었다. 한장 한장 넘기기가 고통스러웠다. 가까운 사람들이 죽고, 고통받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괴로운 일이니까.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은 문재인 의원의 트윗과 같다. 책에 대한 적절한 감상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는 후배에게 똑같은 것을 물려주어야 하는가.






(발췌)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 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인적이 끊긴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가다가, 당신은 출입이 금지된 잔디밭으로 들어선다. 잔디밭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병동 본관을 향해 걷는다. 양말 목이 짧아, 웃자란 축축한 풀들이 당신의 발목을 적신다. 비가 내리기 직전의 진한 흙냄새를 당신은 들이마신다. 잔디밭 가운데 현수막을 덮고 나란히 누워 있었다는 여자애들의 얼굴을 문득 떠올린다. 부스스한 얼굴로 현수막을 걷고 일어나 잔디밭을 걸어 나오는 여자애들의 가벼운 걸음걸이를 떠올린다. 목이 마르다. 한 시간 전에 양치질을 했는데도 혀 뒤쪽이 쓰다. 캄캄한 잔디 아래 연달아 밟히는 게 흙이 아니라 잘게 부서진 유리 조각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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