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국내도서
저자 :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 / 김명남역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5.05.15
상세보기


여자로 이 세계를 살아간다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책이다. 다만 '이거 가지고 남자들을 설득할 수 있겠어? 근거가 너무 부족한 거 아니야?' 라던가 '사회적인 분위기 얘기하다가 왜 자꾸 범죄 이야기로 빠지는 거야?'라는 의문점은 든다. 이 책에 아쉬운 점이다. 물론 블로그에 쓰던 에세이들을 모아서 책으로 출간한 책이니, 근거 부족이나 맥락 변경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남자가 읽자고 해서 매우 의외였다. 물론 읽고 나서 깨달았지만, 이런 책을 읽자고 하거나 스스로 꼰대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사람들은 이런 책 안 읽어도 된다. 오히려 이런 책은 손도 대지 않을 만한 사람이 읽어야 한다만, 그들은 이런 논의의 존재조차 모를 것이다. 이 책은 주제가 정해져 있어서 남자들에게 학대받는 여자, 남성우월주의로 가득 찬 사회에 대한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지만, 이런 문제는 여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결국 '평등'으로 귀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겪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차별하고, 누군가에게서 차별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릴 적에만 해도 팽배하던 남아선호 주의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사라져 가고 있고, 경력 단절 여성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특징인 여성 혐오가 기사화되기도 한다. 또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백인과 서양에 대한 사대주의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동남아 국가나 흑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어느덧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점차 더 많은 사람이 깨닫게 되면 자녀세대가 사는 세상은 좀 더 평화롭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p.49

"이게 무슨 사랑이에요?"라고 물었던 티나 터너(Tina Turner)의 전 남편 아이크(Ike)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래요, 나는 아내를 때렸습니다. 하지만 보통 남자들이 자기 아내를 때리는 것보다 더 많이 때리진 않았습니다."


p.52

여느 지침들은 그런 상황에 대해서 조언할 때 예방의 책임을 전적으로 잠재적 피해자에게만 지움으로써 폭력을 기정사실화한다는 점이다. 대학은 여학생들에게 공격자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 집중할 뿐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에게 공격자가 되지 말라고 이르는 일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여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전혀 없다.


p.92

최근에 많은 미국인들은 '동성결혼'same-sex marriage이란 어색한 용어를 '평등결혼'marriage equality으로 바꾸었다. 원래 이 용어는 동성 커플도 이성 커플이 누리는 권리를 전부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렇지만 이 용어는 결혼이란 평등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뜻도 될 수 있다. 전통적 결혼은 그렇지 않았다. 서구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에, 법은 결혼을 통해서 남편이 사실상 아내의 소유자가 되고 아내는 사실상 남편의 소유물이 된다고 규정했다.


p.94

그러나 더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그런 폭력의 이면에는 피해자를 통제하고 처벌할 권리가 학대자에게 있다고 보는 가정이 깔려 있다는 점, 그가 그럴 목적으로 폭력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p.95

게이와 레즈비언은 어떤 특질과 역할이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가 하는 질문을 진작부터 제기해왔고, 그런 물음은 이성애자에게도 해방적일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자가 결혼을 하면 그에 따라 결혼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들의 결합에는 위계의 전통이 깔려 있지 않다.


p.96-97

결혼은 자식을 낳고 기르기 위한 제도라는 주장이 숱하게 언급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그야 물론 생식에는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은 그 결합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시험관에서 대리모에게서. 그리고 누구나 알듯이, 요즘은 많은 아이들이 조부모나 의붓부모나 양부모, 그 밖에도 아이를 낳진 않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에서 자란다.

이성애자 부부도 아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있는 부부도 많이 헤어진다. 모든 아이들이 성이 다른 두 부모가 있는 집에서 자라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생식과 양육을 평등결혼에 반대하는 논거로 제기한 주장에는 법정도 콧방귀를 뀌었다. 보수주의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전통적 결혼을 보존하는 것, 실은 그보다도, 전통적 성 역할을 보존하는 것이다.


p.105

여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방법은 또 있다. 이름의 문제를 생각해보라. 어떤 문화에서는 여성이 자기 이름을 간직하지만, 대부분의 문화에서는 여자가 낳은 아이에게 아버지의 성이 붙는다. ~ 여자가 결혼을 하면, 그때부터는 가령 샬럿 브론테이기를 그만두고 나서 니콜스 부인이 되었다.


p.111

내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 드넓은 대학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이 강간을 당하자 대학 측은 모든 여학생에게 해가 지면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일렀다. 건물 안에 있어라. 그러자 웬 장난꾸러기들이 다른 처방법을 주장하는 포스터를 내붙였다. 해가 진 뒤에는 캠퍼스에서 남자를 몽땅 몰아내자는 처방이었다. 그것은 똑같이 논리적인 해법이었지만, 남자들은 겨우 한 남자의 폭력 때문에 모든 남자더러 사라지라는, 이동과 참여의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을 들은 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p.183

여자들이 겪는 일에 화내는 남자보다 이 해시태그(#YesAllWomen)에 화내는 남자를 더 많이 봤으니까.


p.218

무신경한 성차별도 사방에서 틈만 나면 우리에게 고삐를 채우려고 든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한 사설은 아빠 없이 자라는 아이가 많아지는 현상을 여자들 탓으로 돌리면서 '여성 경력주의'라는 용어를 썼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