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주는 레시피
국내도서
저자 : 공지영
출판 : 한겨레출판 201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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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사랑이 가득한 말들로 가득하다. 한 개의 챕터도 빼놓지 않고 기억해두고 싶은, 꼭 읽어보아야 할 경수필이다. 올해 읽었던 미움받을 용기보다 더 마음에 와 닿았고 추천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책 선물을 한다면 이 책으로 할 거다. 물론 딸에게 쓴 책이기 때문에 아들에게는 시작부터 감정이입이 안 될 것 같은 글로 시작한다는 게 흠이긴 하다. 하지만 당신이 누군가의 딸이라면, 엄마라는 인생의 선배가 하는 좋은 말씀을 읽어보라. 따뜻한 마음으로 충만해진다. 사랑이 채워지는 느낌. 비록 여전히 요리에는 관심이 안 생기지만, 내 영혼을 위해 좀 더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엄마 말씀을 깊이 새긴다.




책을 읽다가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을 조금씩 마크해뒀었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특별하게 와 닿아서 너무 많은 말을 발췌한 것 같다. 그래도 모두 기억해두련다.


요지는 이게 정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문제를 다시 정신으로 풀려고 하다가는 일이 더 고일 수 있다는 거야. 이럴 땐 슬쩍 우회해서 육체를 건드리는 거지. 육체에 관해 자기가 기분 좋을 수 있는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돼. 달리기 같은 운동이 좋겠지만 그것까지는 무리라면 이런 방법도 괜찮다는 거야.

잠깐, 여기서 그럴 돈 없다고 하지는 말자. 물론 쌀을 살 돈도 없는 지경이라면 더 이상 엄마가 할 말은 없지만, 네가 전에 속상한 일이 있어서 치킨을 2인분이나 시키고 라면을 먹고 맥주를 여러 병 마시는 등 폭식하던 걸 생각하면 그리 비싼 비용은 아닐 거야.


세상은 얼마나 공평하지 않으냐면 저 나쁜 인간들이 사는 곳에 맑고 투명한 햇빛이 충분히 쏟아질 만큼 불공평해. 사악한 자들이 사는 곳에도 아름드리나무가 푸르게 자라고 장애인들을 등쳐먹는 이가 사는 곳에도 희디흰 눈이 내린단다. 평생 남을 위해 작은 것 하나도 나누던 노인이 어느 날 새벽 노동을 하러 가는 길에 뺑소니차에 치여 죽고, 어느 날 문득 다가온 폭풍에 평생 성실히 살아온 어부가 바다로 영원히 사라져버리기도 한단다.


위녕.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 있게. 그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가장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만들면 돼. 평생을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는 없어. 그러나 10분은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 있다. 그래, 그 10분 들이 바로 히말라야 산을 오르는 첫 번째 걸음이고 그것이 수억 개 모인 게 인생이야. 그러니 그냥 그렇게 지금을 살면 되는 것.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어떤 건지 쉽게 이야기해줄까요? 나보고 '뚱뚱하니까 살 좀 빼라'는 친구랑 다시는 놀지 마세요. 나보고 '너 얼굴이 왜 그렇게 크니?'하는 친구랑 다시는 만나지 마세요. '너 다리 굵어'라고 하는 친구랑 말도 섞지 말라고요. 이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새로 머리를 자르고 학교에 왔는데 '어머 너 머리 어디서 잘랐어?' 이러면서 키득거린다든지, '대박이다!' 이러면서 경멸하며 웃는 친구는 이제 더 이상 친구라고 부르지 마세요."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 너는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면 안 되고 이런 친구들을 만나야 한단다. "물론 패션모델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 너는 참 건강하고 아름다워. 네 얼굴이 뭐가 크다고 그러니? 너는 얼굴 작은 타조가 예쁘니, 얼굴 큰 수사자가 예쁘니? 어떤 사람들은 타조가 예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얼굴 큰 수사자가 더 멋있어." 이런 말을 하는 친구 말이야.

만일 어떤 친구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는데 네 뺨이 싱싱하게 보이고 눈이 반짝이면서 아름다워 보이고 '이 정도면 어디 내놔도 괜찮지?'하는 생각이 들고 왠지 책상에 앉아 차분히 일기라도 쓰거나 좋은 책을 읽고 싶어진다면, 그런 친구는 만나거라.

그런데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왠지 화가 나고 아이스크림, 짜장면, 라면, 불닭볶음, 이런 게 막 먹고 싶어지면서 오늘따라 내가 왜 이렇게 밉지 하는 생각이 들거든 그 친구하고의 만남을 자제하거라. 이게 엄마가 네게 줄 수 있는 인생 선배로서의 가장 단순한 충고야.


"그래, 미안하다.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너를 키우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엄마가 너를 골탕먹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엄마도 인생이 뭔지 잘 몰라서 그랬어. 엄마 인생도 네 인생만큼 충분히 골탕먹은 인생이야. 그러니 네가 화를 풀어줘."


"엄마,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말 하면 '그래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했다.' 이랬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태도를 바꿨어?"

내가 말했다.

"왜냐하면, 네가 지난 주일에 첫 선거를 했고, 너는 이제 어른이기 때문이야. 너 마흔 살이 되어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제가 불행했고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했기 때문에 그래요, 하고 말할 테냐? 아니지? 그럼 마흔이 되기 전에 너는 그걸 멈추어야 하는데 공식적으로 성인이 된 지금이 딱 그 시기인 거지."


성경 속 인물 중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은 자신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가 사경을 헤매자 당장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쓰고 울며 단식을 하지. 아이가 죽자 신하들은 다윗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 못했어. 신하들은 생각했지. '아이가 사경을 헤매는 데도 저렇게 슬퍼하시는데 만일 죽어버린 걸 안다면 저분은 아마 돌아가실지도 모른다'하고. 그러나 걸, 막상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자 다윗은 자리에서 일어나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맛있는 걸 차려 내오게 하며 먹는다. 그리고 말하지. "혹시 하느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아이를 살려줄까 했는데 이제 아이가 세상을 떠났으니 내가 그리 갈 수는 있으나 그가 다리 이리로 올 수는 없다. 자, 막고 마시자."


실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간단한 치료법이 얼마 전에 소개된 적이 있었지. 그건 그 증상의 원인이 된 사건을 연상시키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서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는 거래. 너무 간단한 방법이어서 의사들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나중에 이게 엄청난 치료 효과를 보였다는 거야. 렘수면 중에 우리 뇌가 깨어 있는 동안의 정보를 처리하고 말하자면 상처를 치유하는데, 이 렘수면 동안 우리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이는 것에 착안한 것이라고 하더라.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첫눈, 혹은 두 번째 눈에 알아보는 것은 아주 중요해.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의 첫 번째 유형은 폭력적인 사람이야.

두 번째로 네가 피해야 할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란다.

그리고 세 번째가 불행한 사람이야.


위녕. 안젤름 그륀 신부님이 인용한 에픽테토스의 이야기에 이런 게 있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어떤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표상이다."

표상이라는 말은, 즉 이미지라는 것이야. 가난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가난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학벌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학벌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나를 진정으로 힘들게 하는 거야.

물론 가난하면 가방끈이 짧으면 그래 불편하겠지. 불리하고 말이야. 그러나 네가 어떤 것에 가지는 느낌이 참이라면 그것은 일제히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해. 그러나 가난을, 그런 학벌을 그리 불행해 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사람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행의 표본이었으나 현대에는 시크한 커플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야. 예전에는 아이를 여섯이나 가진 사람은 대개는 배우지 못한 가난뱅이였을 수도 있는데(흥부같이) 이제는 아주 부유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말이야. 저주의 대상이던 동성애가 지금은 개인의 성적 취향 무제가 되고, 운명의 문제였던 불구라는 조건은 이제 세금 우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단다.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그것을 체험해본 사람은 이른바 바닥에서만 기던 사람과 다르다는 거야. 저것이 고생을 해보아야 하지, 라고도 하지만 고생 잠깐 해서 깨닫는 사람은 사실 처음부터 그리 중한 죄를 짓는 경우가 거의 없어. 인간이 겪은 고생의 극한인 전쟁이 끝나고 인격들이 더 좋아졌단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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