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혼타스 하면 흔히 디즈니의 포카혼타스를 생각한다. 영국에서 온 백인 남자와 인디언 여자의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 말이다. Joseph Bruchac의 포카혼타스는 디즈니보다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개척자들과 인디언들의 이야기는 매우 잔인했기 때문에, 이 책 역시 상당히 미화해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책 자체는 매우 재미없고, 오래된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뭔 소린가 싶을 때가 많았다. 특히 남자편, 가히 핵노잼이라 할 만하다.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신대륙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그곳이 동쪽의 끝, 인도라 여겨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 불렀다. 사실 그곳은 아메리카였지만 말이다. 원주민, 인디언을 그래서 지금은 native american이라고 부르지만, 어떻게 불러야 할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도착해서 개척을 하고 식민지화 하면서 많은 native american들을 착취하고 학살했다. 결국 그들은 거의 전멸했다. native american들은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 기록된 역사가 없다. 그래서 침탈의 참혹함은 미국 역사에 기록된 것보다 더 심각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지금도 미국 일부 지역에는 native american들이 소수민족으로서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으면서 지내고 있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긴 어렵다. 미국의 역사가 잔인한 학살 위에 세워졌건만, 이제는 사과받을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누구에게 사과를 해야할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몹시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이런 역사적인 면들이 'Brave New World'를 떠올리게 했다. 소설의 배경은 런던으로 매우 문명화된 사회로 유토피아로 묘사된다. 과학의 발달으로 출산이 없어진 세계이고, 사람들은 쾌락을 위해 성관계나 약물을 즐긴다. 문학은 금지되었고, 유전자의 우성 여부로 계층이 나뉜다. 그들은 과거사회의 모습을 한 야만인 사회를 한 구석에 울타리를 쳐놓고 보호하고 있는데, 그들에겐 야만인이 역겹기만 하다. 야만인은 사랑이 있어야 관계를 가질 수 있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문학을 읽는다. 누가 이 소설에서 진정 문명인이고 야만인인가? 런던은 정말 유토피아인가? native american들과 미국의 개척자들의 관계가 이 책에 묘사된 사회상과 많이 겹쳐 보였다. 


'Brave New World'를 읽은 후에 Aldous Huxley는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상상하기 힘든 과학이 발달한 세계라던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만든 점이 특히 그랬다. 하지만 인디언의 역사를 알고 나니 그의 천재성이 조금 퇴색되는 듯 하다.








톰과 제리(1949)



어렸을 때 많이 본 톰과 제리다. 여전히 방송되고 있다. 어렸을 땐 몰랐는데, 알고나니 썩 보기 좋지 않다. 왜 하필 힘센 톰이 인디언 분장을 하고 제리를 괴롭히는 걸까.(4:55쯤 톰이 인디언 분장을 한다.) 어린 아이들이 보면 인디언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이 정말 native amerian들에게 한 짓을 반성하고 있다면, 이런 식으로 희화화해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 1949년에 만들어져 지금보다 사회적 인식이 옅을 때 만들었다는 핑계를 댄다면, 최소한 문제가 있는 에피소드는 방송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I do not mention my mother's name, because her spirit has risen to the high place and walked the beautiful road toward the sunrise. To call her name might confuse her spirit in its journey. But I remember her face and the gentleness of her hands. I remember, too, how strong willed she was. My father says that my own strong will is like that of the one of the one who gave the birth to me.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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